2. 인간 인생 탐구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키다리 가로등 2023. 10. 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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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09 무라카미 하루키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나는 신체를 물리적으로 움직여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
(*마라톤: 그리스 아티키주 북동아티키현의 도시이름. BC490년 아테네군이 페르시아 원정군을 격퇴한 전투 현장으로 유명하다.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전령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약 40km 거리인 아테네까지 뛰어갔다는 전설이 있다)
37킬로 부근에서 모든 것이 싫증나버린다. 도로 옆의 빈터에 흩어져서 행복한 듯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들에게도, 차 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작가에게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셔터 소리가 너무 크다. 양의 수가 너무 많다. 불평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가 난다. 
결승점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 갑작스러움에 대해 까닭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라는 안도감뿐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42킬로를 달리고 나서 내가 느끼는 것은, 처음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달려갔던 그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라톤을 할 때마다 대체로 여기에 쓴 것과 같은 심적 프로세스를 되풀이 하고 있다. 
30킬로까지는 '이번에는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를 지나면 몸의 연료가 다 떨어져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 같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p107)
 
고지식한 근육
주의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 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근육은 무척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순서만 올바르게 밟아 나가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습을 며칠 쉬어버리면, "어렵쇼, 이제 그렇게까지 힘쓸 필요는 없어졌구나. 아, 잘됐다"하고 자동적으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 나간다. 
레이스를 눈앞에 둔 이 중요한 시기에는, 근육에게 착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이건 말이야,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명확한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펑크가 나지는 않을 정도로, 그러나 흔들림 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두어야 한다. 
 
소설 쓰는 법
나는 소설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소설가의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은 전제조건이다. 그다음은 집중력, 그 다음은 지속력.
하루 3~4시간씩 1~2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요구된다. (장편소설은 근본적으로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나는 오전에 3~4시간 집중해서 일한다. (베르베르와 비슷하네요)
뛰어난 미스터리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는 "비록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고 해도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인가는 반드시 책상 앞에 앉아서 혼자 의식을 집중하곤 한다"는 말을 개인적인 편지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위를 했는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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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소설
요컨대 예술행위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성립부터 불건전한 반사회적 요소를 내포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내 생각이지만 오랫동안 직업적으로 소설을 써나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위험한 체내의 독소에 대항할 수 있는 자기 면역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젊었을 때 뛰어나게 아름답고 힘이 있는 작품을 썼던 작가가 어느 연령대에 접어들자 급격하게 피폐해져 가는 일이 있다. 본인의 체력이 자기가 다루고 있는 독소와 싸워 이길 수 없었던 결과가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소설가에게 있어서 유일한 올바른 방법 같은 건 어디에도 없지만,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해달라고 한다면 '기초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일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은 해볼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다, 라고 믿고 있다.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 참가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면서 달리는 사이 75킬로 근처에서 뭔가가 슥 하고 빠져나갔다. 나는 규칙적으로 팔을 앞 뒤로 흔들며, 다리를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기만 하는 자동적인 존재로 변해있었다.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 버린' 뒤 많은 주자를 추워했다. 자동조종 같은 상태로 몰입해 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더 달리고 있으라는 말을 듣는다면, 100킬로 이상이라도 아마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는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서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그 상태에서는 달린다는 행위가 거의 형이상학적인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행위가 먼저 거기에 있고, 그 행위에 딸린 것 같은 존재로서 내가 있다.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명상 상태와 비슷한 주법이었다.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매우 고요하고 고즈넉한 심정이었다. 의식 같은 것은 그처럼 별로 대단한 건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끝'이라는 것은, 그저 우선 한 단락을 짓는다는 것뿐으로, 실제로는 대단한 의미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끝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라는 사물의 의미를 편의적으로 두드러지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또 그 유한성의 에두른 비유로서, 어딘가의 지점에 다른 일은 젖혀놓고 우선 종착점이 설정되어 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울트라 마라톤의 체험이 나로 하여금 터득하게 한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었다. 내가 갖게 된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허탈감이었다. '러너스 블루'라고 할만한 것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무리

 

제가 학창시절 제일 못하던 운동 중 하나가 장거리 달리기였습니다. 과거에 못했던 것을 지금 극복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하는 운동에 대한 느낌도 궁금해서 고른 책입니다. 
1982년 가을부터 23년간 매일 조깅을 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24번 완주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을 보고 달리는 자의 마음을 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거리달리기에 타고난 몸을 갖고 있었어요. 한 번도 다리가 아팠던 적이 없었다고... 더 중요한 건 달리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각자 스스로에게 맞는 운동이 있는 것 같습니다. 
테니스, 탁구 등은 상대가 있어야 하고, 특정장소에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저는 실내에서 자전거를 타보려고 합니다. 어릴적 극복 못한 장거리 달리기(지구력)를 자전거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심장이 더 튼튼해지고, 머리도 빠릿빠릿 해지겠지요? (뛰는 건 관절에 무리 갈까 봐 못하겠네요)
무작정 걷는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 도시는 계속 걷기에 너무 불편합니다. 그래서 큰 공원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요.
 
어릴 적에는 숨이 차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ㅎㅎ 지금은 운동으로 제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정적인 운동만 종종 했었던 제가 아래 운동에 관한 뇌과학 책을 본 뒤로는 그런 조용한운동에 대한 관심이 줄었습니다.
 
아래 운동에 관한 뇌과학 책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운동해야 하는 이유 (tistory.com)

 

운동해야 하는 이유

운동을 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게으름 피우는 저에게 동기부여를 시키고자 고른 책입니다. 유쾌한 운동의 뇌과학_2020마누일라 마케도니아 뇌는 달리고 싶다_2019 안데르센 한센 걷기의 세계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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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그의 서랍에 남겨진 글들 중에서 2000년 이후에 쓰신 글들을 선별해서 책으로 낸 마지막 산문집입니다. 세상에 예쁜 것 _2012 박완서 작가, 문학 나는 문학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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