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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인생 탐구

정치가 엉망인 건, 나라 전체의 문화(국민의 수준)

by 키다리 가로등 202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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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
_2021.5 최진석
(*2017.5~2022.5 문재인 대통령)

 

1. 국가란

p38 국가는 국방조세라는 두 기둥으로 버티고 선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국가는 최종적으로 전쟁하는 집단이다. 대외적으로는 거칠고 강해야 한다. 
 
p45 대통령은 정치인에서 국가경영자로 변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계속 진영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p47 정치심리적 기대나 선동이 아닌 "정책"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의 새로운 시대 의식은 이제 정치보다 정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p53 국가는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이다. 국가는 전쟁을 하는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된다.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 '부국강병'이다. 
시민단체는 부국강병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는 부국강병만 유일한 길이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강병이 빠진 부국은 체력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 보면 정신승리로 겨우 버티는 아큐가 된다. 
 
p56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다. 언어나 문화나 풍습을 공유한다고 믿음으로 구성되는 정서적 공동체다. 법률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족에 빠지면 감정과 정서에 치우치게 된다. 국가는 감성과 정서를 배제한 법률과 이성으로 관리된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지 않는다. 민족의 시각으로는 국가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다. 우리는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북한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 굽신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남한, 북한을 한민족으로 볼 게 아니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vs국가로 봐야 한다. 
p91 대통령부터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자신이 민족의 지도자인지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인지 분간을 못한다
 
국군의 날무력과시의 날이지 흥을 돋우고 군인들을 위로하는 날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제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단계를 벗어나 국가를 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 이익으로 안보 이익이 흔들리면 안 된다. 안보가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국가가 무능하면 그 안의 구성원들은 개돼지만큼의 존엄도 갖지 못하는 것이 세상사다. 한국은 눈만 껌벅이다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고, 대한제국도 일본의 의도에 따라 세워졌다. 해방도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의 도움으로 했다. 그래서 해방 후의 주도권은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무지하고 무능해서 스스로 지키지 못한 일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친일세력을 완전히 척결할 수 있는 독립적 구조를 갖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다. 
(프랑스가 독일을 물리치고 반역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영토를 회복하고 주도권을 행사할 역량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p155 정권이나 기업이 망할 때 외부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모두가 스스로 망한다. 스스로 망하고 나서 외부의 힘에 굴복한다. 정당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다. 
 
일제강점기 35년(1910~1945), 국가 없는 백성으로 태어나 국가의 보호를 받아본 적도 없고, 국가에 충성하는 법도 배워본 적 없다. 35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내는 긴 시간이다. 시인 서정주는(1915년생) 자신이 한 친일 행위에 대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라고 고백했다.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에 세 가지 교훈이 있다. 
1. 한 사람이 정세를 잘못 판단하면 천하의 일을 그르칠 수 있다. 
2.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국방을 다룰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 
3. 전쟁 간은 큰일이 닥쳤을 때는 반드시 나라를 도와줄만한 우방이 있어야 한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국가에는 최종적인 단어다.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이나 버나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평화를 지키려고 평화적으로만 살면 거꾸로 평화를 잃는다.
전쟁을 각오하면 오히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얻는다
 
중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문해서 혼밥을 하고, 함께 간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것을 치욕으로 여기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는 것도 기능적이고 감성적인 태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자존을 포기해 버렸다. 자존은 국가의 마지막 보루다. 국가 간의 일은 감성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2.생각이 없는 정치

종북좌빨, 토착왜구, 친일파, 반일파 같은 프레임 씌우기는 사유(생각)의 정지를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 
 
p119 조금씩 양보하면서 포용함? 그런 일은 정치현실에는 없다. 그럼 주도권은 누구에게로 가는가? 그것은  옮고 그름 너머의 다른 어떤 힘을 가진 자에게로 간다. 그래서 주먹이 있고, 정치가 있고, 전쟁이 있다. 
좌파는 좌파대로 옳고, 우파는 우파대로 옳다. 옳은 말과 옳은 말 사이의 다툼은 말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2021) 좌파가 주도권을 가졌다. 우파가 권력을 빼앗긴 것도 한마디로 말하면 산업화 이후까지 지속될 매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속 인재를 양성하고자 야학이라도 하는 좌파에 비해 우파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공적헌신보다는 이기심과 탐욕에 더 뭉쳐있다. 좌파가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지적만 할 뿐, 말이상의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일에만 결사적이다. 이미 좌파, 우파의 매력이 약발이 다했다. 어느 진영도 미래를 말하는 능력이 없다. 우리의 권력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갤럭시 S10을 들고 1980년대 초반을 산다. 통탄할 일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 신념만 강화된 전사, 그 사회는 폭력적 사회가 된다.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된다. 서로 대립적인 정치 집단이라 해도 익숙한 같은 높이에서 같은 수준의 행위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말은 했지만, 과거에 갇혀 있다. 
 
자유한국당(현 국힘당)은 탐욕과 무능과 복고만 남았고, 민주당 역시 또 하나의 복고정당이지 미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은 아니다. 민주당의 독주에는 헌법정신마저도 깔아뭉개는 무지와 오만이 보인다. (법무부장관이 "단순히 알 권리보다 조금 있다가 알아도 될 권리가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추미애 장관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고 수긍이 된다면, 당신은 아직 논리가 법보다는 감정에 단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리더는 보통사람보다 진실의 양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면 차라리 분열을 하나의 방법으로 채택한다. 그런 정치공작에만 익숙한 정치인들은 철학적 문제제기를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치부한다.
 

3. 진영논리, 종속성

대중은 자신이 자신의 정치행위를 하는지, 아니면 정치인들에게 포획되었는지 여부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홍위병도 되고 '빠'도 되는 것이다. 그것을 권력자들은 알고 이용하지만 대중은 모른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면서 의기양양하기만 하다. '태극기부대'나 '대깨문'으로도 표현되는 모든 '빠'는 진영논리에 갇힌 종속적인 상태다. 감성에 빠져 선동적인 행위를 일삼을 뿐 차분하고 논리적인 지적 활동을 하지 못한다. 
 
스스로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사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집단이 가진 생각을 내면화하여 그것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독립적 주체로 착각하는 상태다. 자신이 만든 것으로 삶을 채우려 하지 않고, 외부의 누군가 만든 것을 빌려오거나 그것을 따라 만들면서도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누가 되었든 신념화된 자기 소리만 계속해대는 사람은 일단 지적이지 않다. 이런 썩은 프레임은 폐기처분해야 한다. 그래야 선진화라는 새로운 어젠다를 구축하고 시대를 건너간다. 종북좌빨, 보수꼴통, 토착왜구, 좌좀, 이런 폭력적인 프레임 씌우기에 의존하지 말고 곰곰이 생각하여 지식의 생산에 도전하자. 
 
이명박과 노무현 사이나 박근혜와 문재인 사이에 높이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같은 높이에서의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진영 지키기에 빠진 우물 안 개구리들은 역사의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낡은 문법을 지키는 투사들도 이제 필요 없다. 차라리 경쾌한 도전에 나서는 젊은 무모함이 더 의미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절한 어젠다를 세우지 못하면 망한다. 기업도, 정당도, 개인도, 나라도 그렇다. 조선말기도 그랬다. 적절한 어젠다를 세우지 못하는 나라는 마치 꿈이 없는 학생이 책가방 들고 학교 들락거리면서 시험성적만 괜찮으면 만족하는 것처럼 시스템 안에서 마치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 착각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오는 일을 '각성'이라고 한다. 각성 없는 지성은 프레임에만 갇혀 새 비전을 만들지 못한다.
정신을 차리느냐 안 차리느냐가 모든 일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 학생도 꿈을 가진 상태에서 공부하는지(목적), 성적이나 합격을 전부로 생각하는(목표) 상태에서 공부하는지가 인생전체의 격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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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진화

우리는 산업화-민주화 과업을 완수했다. 문제는 민주화 다음이다. 과거가 새로운 세력에 의해 도태되면서 사회는 진보한다. 문제는 민주화 다음의 시대의식을 아직 못 찾았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바로 '민주화 다음'이 전개되어야 했다. 민주화 다음은 선진화라 할 수 있다. 사회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
 
민주화 다음을 꿈꾸지 않으면, 민주화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간다. 
 
종속적 단계에서 능동적 단계로,
선례 찾기에서 선례 만들기로,
대답하기에서 질문하기로,
지식수입에서 지식생산으로.
 
지식의 생산이 바로 문명의 생산력. (곰곰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생산자가 된다) 지식을 수용하는 위치에서 머무르면 삶은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지식과 내공을 동시에 닦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독서다. 용기는 독서로 가장 잘 길러진다. 
 
문화는 하거나 만들어서(文) 변화를(化) 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문화적 존재이다. 우리가 독립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는 문화적 차원에서 독립해야 한다. 
 

5. 개념화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에서, 우리를 지칭하는 통일된 하나의 지칭어가 없음을 지적한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살든 유대인이고, 중국인들은 어느 나라에 살든 다 화교다. 그러나 한국인은 한국사람, 조선사람, 재일교포, 재미교포, 조선족, 고려인 등을 총칭하는 단어가 없다. 왜 없을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아직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단어는 '지적 개괄'이나 '개념화'의 결과인데, 이는 자신의 삶을 전략화하는 필수 과정이다. 워라밸, X세대, 소확행_등이 다 이런 것들이다. 개념화를 시도하는 국가는 넓어지고 단단해진다. 개념화의 결과를 수용하던 습관에서 벗어나자. 창의성도 다 이런 거친 개념화와 연관된다.
책은 다양한 개념화가 지적으로 체계화된 보물 창고다. 국가를 운영하는 상층부에 속한 사람들은 특히 지적이어야 한다. 
 

6. 촛불은 혁명이 아니다

틀이 바뀌면 혁명이고, 기능만 헤집으면 반항이다. 틀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바꾸는 기능적 교체로 완수된 혁명은 여태 없었다. 혁명은 이 기능에서 저 기능으로 수평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들이 활동하는 단계 자체를 뛰어넘어 '틀'의 높이로 수직이동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천명한 인사 5대 원칙만 지켰어도, 말의 무게를 실현하여 국가의 새로운 틀을 형성할 기회였는데, 잘 살리지 못했다. 정치를 임하는 태도나 시선의 높이는 우선 인사 과정에서 죄다 드러난다
 
이명박정권의 인사문제를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박근혜 정권의 인사문제를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고), 문재인 정권의 인사문제를 캠코더(캠프출신, 코드인사, 더불어민주당출신)라고 한다. 구조적인 면에서 서로 다름이 없다. 진영을 넘어서는 인사를 해야 한다. 과거 인사관행을 깨부수어야 한다. (p192)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까지만 국가높이의 대통령이었다. 반대세력이었던 6 공화국 출신 김중권을 비서실장으로 품은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김대중 이후의 대통령들은 국가레벨의 통치라기보다는 진영레벨의 통치였다.
그 흐름이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심해진 것일 뿐이다. 적폐청산은 국가 전략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특정 진영의 전투력만으로 행사됨으로써 이미 나라를 둘로 쪼개는 역할이상을 하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
 

7. ★보통사람 모두의 책임

p200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보통사람 모두의 책임이다. 정치는 그 사회의 얼굴이다.  나라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이미 조성되어 있는 나라 전체의 문화에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의 비리, 회사에서의 비리 등등)
우리 일상의 현장에서 박근혜 최순실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보통인의 삶의  현장이 그 나라의 문화고 한 나라는 그 문화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상의 정의가 나라의 정의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각성이 필요하다. 
 

8. ★시선의 높이가 중요한 이유

2020년 대북전단금지법을 보자. 현실(북의 위협)을 피하려고 더 높은 곳에 있는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면 안 된다. 사유의 레벨에 있는 것을 선택해서 현상적 사건(북의 위협)을 통제해야 한다. 북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더 커 보인다면, 당신은 미래로 건너가지 어려운 심리상태에 빠져있다. 시선의 높이가 현상(현실)적 레벨에 있는 것은 사유(생각)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 필요라고 하는 것에 의해서 사유의 레벨에 있는 것이 밀려나면 안 된다. 사유로 현실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야 퇴행하지 않고 전진한다. '사회문제'해결도 중요하지만, 사회문제에 집중하느라 '자유'라는 높은 어젠다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함정인 것이다. 
 
자유를 추구하면 자유가 처한 높이에 이르고, 빈곤만 해결하려고 들면 빈곤이 처한 높이에 머문다. 인생사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윤리적인 기업이 윤리적이지 않은 기업보다 더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윤리적인 기업은 수준이 높다. 이 시선의 높이는(본질)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크기와 생명을 더 효과적으로 보장해 주는 무기가 된다. 본질과 기능 사이에서 본질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야만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차원을 높여가며 사회를 전진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보고 만지는 감각 경험 세계에서 쾌락을 만드는 일이 예능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높이에서 쾌락을 다루는 일은 예술이다. 무엇을 즐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가 삶의 질과 양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시선이 예능의 높이에 있다. ㅜㅜ
 

9. 아큐의 무능한 정신승리법

아큐정전은 1921 중국의 루쉰의 단편소설이다. 주인공 아큐는 날품으로 먹고사는 하층 계급인데, 술과 노름에 번 돈을 탕진하며 산다. 툭하면 깡패에게 얻어터지면서 '아들뻘 되는 것들과 싸워 뭐 하나, 수준 떨어지는 것들인데'라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을 구사한다. 도둑질해서 돈도 벌고, 신해혁명에 발을 얹어보려고도 하는데, 나중에는 하지도 않은 강도짓에 서명조차 엉뚱하게 하면서 사형당하는 이야기다.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이건 꿈이라 여기며 정신승리법을 구사한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평생 성장도 못한 채. (당시 중국 시대를 비판하는 루쉰의 작품)
 

10. 교육_독립적 주체 만들기

사회가 작동하는 중심 톱니바퀴 두 개는 바로 정치교육이다. 교육이 한 나라의 백 년 후를 결정한다. 교육의 관건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다. 변화를 야기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지식의 습득이나 축적에만 관심을 둔 교육환경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 변화는 없다. 오직 '나'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독립적 주체)만 있다. 교육의 최종단계는 독립적 주체 만들기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귀하고 높은 질문은 어쩔 수없이 '나는 누구인가?'가 된다. 
 
번잡한 일들로 포위된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골똘히 빠질 수 있는 고독한 시간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고독이 동반되지 않은 교육은 성공하기 힘들다. 고독은 사소한 것들을 일거에 소멸시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남길 수 있는 특효약이다. 
 

11. 우리 일상을 바꿔야 나라가 바뀐다

일상이 종속적이면 삶이나 공동체가 독립적일 수 없다. 월악산, 노고단, 대관령이 앞다투어 한국의 알프스라 자칭한다. 영남에는 아예 '영남알프스'가 있다. 대관령은 대관령으로 존재해야 진정한 가치를 부여받는다. 알프스에 인정받음으로써만 대관령이 될 수 있다면 대관령은 위대해지기 어렵다. 한국의 산티아고길, 한국의 000 모두 종속적 습관이다. (대관령만의 고유함이 있는데, 왜 알프스와 비교해서 스스로 가치를 없애는지 모르겠네요)
 
외국말로 포장해야 더 권위 있어 보이는 줄 안다. 언어주체의 독립을 지키는 근본장치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오 마이 베이비'면 어때? 멋있게 들리고 시청률만 높으면 되지." _이 것은 "인성 좀 나쁘면 어때? 공부만 잘하면 되지."와 일치한다. 기능에 빠진 삶으로는 독립적 단계에 오를 수 없다. 
 
 

마무리

몰랐던 부분을 많이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책 앞부분을 읽으면서 트럼프대통령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_국가 경영자, 부국강병.
 
1. 저도 한 때 북한을 측은하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했었는데, 국가 vs 국가로 대해야 한다는 걸 배우고 갑니다. 국가높이에서 생각해야지 감성에 젖으면 안 된다는 것.
 
2. 정치가 썩은 건, 보통사람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 나라 자체의 문화가 그렇다는 것. 우리 모두 각성해야 한다. 
 
3. 현실적 문제가 커 보인다면 당신은 미래로 건너가기 어려운 심리상태라는 것. 빈곤만 해결하려고 들면 빈곤이 처한 높이에 머문다. 
 
우리나라, 한국은 남 따라 하는 걸 아주 잘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던 경험이 있어서요. 
하지만 스스로 뭔가를 창조한 적은 없지요. (한글 빼고)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명화를 완전 똑같이 따라 그리지만, 그 이상을 창조하진 못한다는 것. 하지만 계속 그리다보면 그 이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개인이 바뀐다면,
이 사회도,
이 정치도,
이 나라도
더 높은 시선으로 바뀌겠지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이 높아져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_2016 피터싱어_ 에도 이런 말이 나와요. [(종교비판 등)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지 않을 때 인류의 진보는 조그마한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 것이다]_ 이 시선의 높이가 우리 사회를 차원높게 진화하게 할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제3차 대전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서 걱정인 와중에, "전쟁을 각오하면 오히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얻는다."는 말이 가슴에 남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수호하고(외교정책, 전쟁과 평화관리), 국민을 통합시키고, 헌법을 수호하면서 국정을 잘 운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올바른 리더쉽과 소통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도덕성과 청렴성은 기본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기본도 없고, 국민을 분열시키기 바빠보여서 걱정입니다. 정치에 있어서 분노가 치밀으면 그건 정치가 아닙니다. 감정적인 것일 뿐이죠. 우리는 그 단계를 넘어야 해요. 
 
중국은 독재로 가고 있고, 미국은 자국우선주의로 가고 있지요. 중국은 시진핑 독재 때문에 점점 퇴행하고 있어서 미래가 어둡네요...저러다가 중국이 여러조각으로 찢기는거 아닌가 몰라요... 주변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우리나라이기에 걱정이 됩니다.
 
러시아, 중국 등 겉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일찍이 자본주의적 요소를 적극 받아들여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1978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소련붕괴 이후 러시아의 자본주의 성장) 고립을 피하고 국제사회에 경제성장을 하려면 필요한 선택이었지요. 하지만 나라의 면적이 커서 그런지 강한 통제력은 놓을 수 없었고, 자연스레 기술 혁신 부진, 천연자원 의존, 첨단산업 퇴보, 인재 유출, 사회불만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었지요. 큰 면적 때문에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16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는 외부위협에 민감해서라도 안전을 위해 더 통제력을 강화할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면적이 큰 미국은 50개 주로 자치권을 나누고 있고, 인도는 연방제를 운영하고 있지요)
 
러시아와 중국 국민들은 왜 자유를 외치지 않을까? 의문이 들수도 있는데요. 독재가 강화될수록 북한처럼 더 강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하니 러시아와 중국의 국민들은 더 무기력해지고 문제점 인식도 하지않게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트라우마). 국가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계속 국민들의 눈을 가리게 됩니다. 이미 국민들은 진실을 알기 어렵고, 먹고 사는 게 시급하며, 마땅한 대안도 없는 것이죠.
하지만 나라의 경제가 무너지는 순간, 국민들은 본격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결국 푸틴이나 시진핑도 경제가 악화되고 권력승계가 실패하고 국민 불만이 증가하게 되면, 그 임계점에 닥치면, 체제가 많이 바뀔 거예요. 우리나라 과거 삼국시대만 봐도 자식들이 왕위를 다투며 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외부세력이 침략해서 정복당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모든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먹고 살았는데, 이젠 중국의 공장들이 인도 등지로 변화하고 있고, 러시아는 자원수출국으로 먹고살았는데 미국에 의해(미국의 셰일혁명, 최대 원유 수출국) 크게 타격을 입었습니다. 둘 다 경제위기를 내다보고 있지요. 해결책은 ① 반도체 자립이나 미래산업에 투자 ② 방위산업 강화 ③ 농업 수출 확대 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가 기술자립과 내수시장 강화에 성공한다면 성장도 가능 하겠지요. 하지만, 고령화, 부동산버블, 저출산을 겪으면서 어떻게 극복할까요...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경제를 구축해야 함이 필수적이라 하겠네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가 약화되면, 일본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되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네요. 
 
아래는 우리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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